Trieste_대륙의 전쟁 - 12장. Dead of the Secretary. 회당 안의 시체
| 21.02.03 12:00 | 조회수: 2,581


델카도르뿐 아니라 아이언 테라클도 바라트, 그것도 밤의 바라트는 처음이었다. 사실 과거와 관련된 자들을 제외하면 바라트에 오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바라트는 트리에스테 대륙의 인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 중의 하나였다. 크레스포가 이계의 오염이 퍼져서 가기 싫은 곳이라면 바라트는 예전에 이계의 오염이 몰아쳤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칼리지오 밧슈가 그랜드 폴을 일으킨 곳이 바로 바라트였다.

“가리온 초이가 이곳에 있다면.”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를 보았다. 델카도르는 말을 계속 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대멸망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언 테라클은 무표정하게 있다가,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대륙의 영웅이 되겠군. 트리에스테 대륙을 멸망으로부터 건져내는 영웅 말일세.”

델카도르는 아이언 테라클의 오만한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참아주기로 했다. 어느 때보다도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가 필요했다.

“그래야지요.”

“그래. 가리온 초이는 여기 있는 건물들 중 어디에 숨었을 것 같나?”

델카도르는 정확히 알지 못해 대답할 수 없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바라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 몇 채 있었다.

“수색대를 보내.”

아이언 테라클은 지시했다. 횃불을 든 병력은 절반만 남고 곧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네는 이야기를 계속하게.”

델카도르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리온은 저에게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의 행방을 알고 싶다고 했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닐 겁니다. 가리온 초이는 멸망을 일으키기 위해 백기사단을 찾은 겁니다.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중간자를 백기사단이 알고 있을 테니.”

델카도르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이언 테라클은 주의하여 듣는 태도를 보였다.

“또 다른 중간자?”

잔바크 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시는군.”

델카도르는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리온 말고 중간자가 또 있습니다. 고대의 일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남겨진 일부 야사들에 의하면 칼리지오 밧슈는 자신의 피 말고도 다른 피도 제단에 뿌렸습니다.”

아이언 테라클과 잔바크 그레이는 놀라는 표정이었다.

“백기사단은 고대부터 존재하던 기사단입니다.”

“그래서?”

델카도르는 잠시 아이언 테라클의 눈치를 보다가 사실대로 말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운도 마조키에의 후예는 백기사단, 그들입니다.”

“….”

아이언 테라클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인카르 교단이 아이언 테라클을 운도 마조키에의 후예라고 한 것은 거짓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선전이었다. 잔바크 그레이는 당황한 듯 아이언 테라클의 얼굴을 보다가 눈치껏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운도 마조키에는 대륙을 다스리던 신이었습니다.”

“…?”

“칼리지오 밧슈와 가장 절친했던 자가, 바로 운도 마조키에였습니다.”

“그러니까.”

“운도 마조키에의 피도 그랜드 폴을 위한 제단에 뿌려졌다는 겁니다.”

“이런.”

“그러니까, 가리온 초이는 또 다른 중간자라고 할까, 그들을 찾아야 했지요. 카론에게 협력한 여섯 신을 말이죠.”

“여섯 신?”

“아시겠지만, 인카르 교단에는 열 둘의 주신이 있습니다. 그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신들이지요. 알로켄 시대에도 있던 신들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신들 중 반이 카론에게 붙었습니다.”

델카도르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이언 테라클과 잔바크 그레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잔바크. 가리온과 같이 했던 일행이 정확히 몇이지?”

잔바크 그레이는 어리둥절하더니, 손으로 세어 보았다.

“열 둘.”

“당신과 함께 나온 자가 몇이지?”

“나와….”

잔바크 그레이는 돌아서 친구들의 모습을 찾아 보았다. 파그노와 칸, 헤이치 페드론과 시리엘 아즈, 그리고 쿠리오의 모습이 보여야 했는데 보이질 않았다. 카시미르 산맥에서 가리온 일행을 놓아 준 그들에게 심하게 면박을 준 후, 잔바크 그레이는 아이언 테라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설마. 헬리시타로….’

“몇이지?”

델카도르가 다시 물어, 잔바크 그레이는 대답했다.

“여섯이오.”

“여섯!”

잔바크 그레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그제야 이해한 듯 여섯을 외쳤다.

“그렇다면 가리온이 데리고 있는 모두가 중간자이겠군!”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이러다가는 비나엘르 파라이가 원하는 대로 카론이 부활할지도 모릅니다.”

“자네.”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의 말을 끊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건가?”

“비나엘르 파라이가 카론을.”

“뭐라고?”

“비나엘르 파라이가.”

“자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사실입니다.”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를 노려보았다. 델카도르는 지금 비나엘르 파라이가 카론을 부활시키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대륙의 여신인 비나엘르 파라이를 욕보이는 것은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트리에스테의 천사였다.

“어째서?”

“비나엘르 파라이는 알로켄족입니다.”

델카도르는 아이언 테라클에게 기가 눌렸다. 지금 아는 것을 전부 말하지 않으면, 아이언 테라클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알로켄족입니다. 가리온 초이의 생부, 검성 슈마트라 초이가 비나엘르 파라이의 아들입니다.”

“점점 더 가관이군. 지금 나더러 너의 헛소리를 믿으라는 거냐?”

“정말입니다. 듀스 마블이 왜 무리하게 슈마트라 초이를 사죄의식에 처했겠습니까? 왜 슈마트라 초이가 함정에 빠지는 줄 알면서도 듀스 마블의 지시를 따랐겠습니까?”

“…!”

“슈마트라 초이는 원래 떠돌이 기사였습니다. 검에서 빛이 나는 재주를 가져서 그것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함께 유랑했던 사람들은 그를 칼리지오 밧슈의 후손, 니에테라고 했답니다. 죽음의 신 세라피를 다른 말로 니에테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서 슈마트라 초이 손에 죽은 사람도 꽤 된다고 합니다.”

“난 전부 처음 듣는 소리군.”

“그게 미화된 겁니다. 듀스 마블의 권력 덕택에 악의 상징이 정의의 상징으로 미화된 거지요.”

“듀스 마블은 기사계를 두려워했지. 그래서 본보기로 슈마트라 초이를 사죄의식에 처한 것이다. 슈마트라 초이는 바보같이 걸려든 것이고. 이제 그들은 시체가 되어 내 손에 있지.”

아이언 테라클은 멀리 떨어진 관을 가리켰다. 갑작스런 기습에 가리온 초이 일행을 빼앗겨 버렸지만, 황색당은 조무래기였다. 백기사단은 가리온 초이만 얻자 바로 등을 돌려 도망쳤고, 노라크 교도들은 일정 범위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무식하게 남은 황색당만이 지리멸렬하게 아이언 테라클의 인카르 군대에 저항하다가 떨어져 나갔다. 기습으로 가리온 초이 일행을 빼앗긴 것이 억울했던 아이언 테라클은 잔바크 그레이의 일행의 의견을 따라 바라트까지 내려오던 참이었는데 델카도르를 마주친 것이다.

“노라크 교도는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에게 복수한다 떠들어대더니, 우리가 황색당의 머리를 모조리 베어버리자 벌벌 떨며 달아나더군.”

“…. 생각해 보십시오.”

델카도르는 아이언 테라클을 설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나엘르 파라이가 듀스 마블보다도 관심을 가진 자는 슈마트라 초이 뿐이었습니다.”

“…!”

“어느 누가, 검신 아모르 쥬디어스 말고 칭호를 얻었던가요? 칭호는 듀스 마블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랜드 폴 이후에는 오직 아모르 쥬디어스와 슈마트라 초이 뿐이었습니다. 아이언 테라클님은 듀스 마블과 함께 아모르 쥬디어스에게 수학했으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듀스 마블은 늘 비나엘르 파라이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의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언 테라클이라고 비나엘르 파라이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늘 의심했다. 심지어 비나엘르 파라이의 뒤를 밟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언 테라클은 마법으로 밀랍처럼 굳어있던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를 발견했었다. 누트 샤인으로부터 온 편지도 있었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사라졌던 조디악 아모르 쥬디어스의 편지를 읽는 바람에 다른 것은 볼 수 없었다.

‘역시. 비나엘르 파라이가…. 하지만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는 피톤성에 나타났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도대체…. 휴…. 그 때, 누트 샤인의 편지를 읽는 건데….’

델카도르는 아이언 테라클의 생각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말하려 했다.

“그러니까.”

“아이언 테라클님!”

다시 수색대가 나타났다. 수색대 대장은 잠시 델카도르를 보더니 아이언 테라클에게 보고했다.

“다른 것은 없었고. 바기족 하나가 죽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누트 샤인 같습니다.”

“어딘가?”

이번에도 델카도르가 먼저 나섰다.

“저기.”

수색대 대장은 회당으로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

델카도르는 딱딱한 돌바닥을 밟으며 달렸다. 아이언 테라클도 뒤따랐다.

어두운 회장에 불빛을 비추자 바닥이 갈라진 구석 끝에 엎어져 있는 작은 시체가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델카도르는 누트 샤인에게 달려갔다. 그는 정말로 바닥을 뒹구는 시체가 누트 샤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처럼 달려가려다 흠칫 멈춰 섰다. 누트 샤인과 한 때 금을 거래했던 행실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래서 시신을 확인하는 델카도르를 멀리서 보았다.

“바기족의 족장.”

아이언 테라클은 누트 샤인을 회고했다. 아이언 테라클과 불법적인 거래를 했지만, 그는 유능하고 영리한 족장임에 틀림없었다. 듀스 마블과 은밀한 거래를 한다는 것도 눈치를 챘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오히려 그것이 족장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의 치밀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누트 샤인은 죽지 않을 줄 알았는데….”

델카도르는 작은 시체를 보았다. 사람의 아기가 아닌데도 이렇게 작은 것을 보면 누트 샤인이 확실한 듯 했다. 헐어서 먼지까지 앉은 바랜 망토를 살짝 걷어보니, 허물어져 썩어가는 피부가 드러났다. 길쭉하고 고름처럼 생긴 그것은 누트 샤인의 피부가 확실했다. 다시는 열리지 않을 입가에는 축 처진 살들이 흉물스러웠다. 완전히 감기지 않은 듯한 두 눈에 눈알은 사라져 있었다. 눈가가 찢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벌레나 짐승 같은 것이 파 먹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누트 샤인이 분명해….”

델카도르는 확신하며 누트 샤인의 시신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았다.

누트 샤인의 손은 무언가 안타까운 것을 놓친 듯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델카도르는 직감했다.

“없어….”

“자네. 지금 뭐라고 한 건가?”

아이언 테라클은 멀리서 델카도르에게 물었다.

“가리온은 여기에 없어요…. 없습니다!”

적막이 지나가는 아이언 테라클 일행의 머리 위에는 두 개의 달이 첨예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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