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bivalence - 타인과 적 - 14장. with misgiving. 마음의 전달
| 21.01.20 12:00 | 조회수: 966


해질녘 가리온이 비틀거리며 바루나의 집을 나왔을 때, 아는 얼굴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창피해서, 얼굴을 가렸다.

볼이 움푹 들어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만지는 것처럼 같았다. .

바루나의 전언이 끝나자마자 가리온의 몸은 밖으로 튕겨졌다.

“말도 안돼….”

온 몸에 자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인 가리온은 크루어를 잡았다.

뒤 돌아 검으로 문을 부수고 바루나의 목을 겨눌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바루나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맴돌았다.

“아니야….”

가리온은 중얼거리며 발을 떼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저 크루어만 꼭 부여잡고 멍하니 걸었다.

“어이. 이봐.”

가리온은 누군가가 부르는 줄도 모르고 마냥 걸었다.

“이봐. 정신 차려!”

그래도 가리온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때문에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잡았을 때, 순간적으로 크루어로 베어버릴 뻔 했다.

“어이. 어이. 진정해.”

가리온의 어깨를 잡은 사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젊어 보였지만 눈과 입에 주름이 많았다. 그는 얼굴 주름을 이용해서 한껏 웃어 보였다.

“크레스포에 처음인가 보군.”

가리온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봐. 오해하지 마. 난 자네를 구한 거야. 저기는 위험하다구.”

가리온은 앞을 보았다.

오묘한 빛이 하늘거렸다.

“저게 뭐지?”

“뭐기는. 오염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지.”

“…!”

“괴물을 만들어내는 성이라고 할까.”

가리온은 오묘한 빛을 멍하니 보았다.

방금 전 받은 충격 때문인지 아무 감흥이 없었다.

“가리온!”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리온이 고개를 돌리자, 사내도 따라서 힐끗 보았다.

“자네, 일행이 있었군.”

사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혹시 딜이 필요하면 내게 오게. 자네가 할 만한 일거리가 있지.”

가리온은 사내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사내는 이름까지 말해주었다.

“난 쿠퍼라고 하네.”

그리고 가리온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옷을 잡아 끌어 작게 말했다.

“혼자 오게.”

사내가 떠났고, 일행은 가리온을 향해 달려왔다.

가리온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일행들은 즐거운 분위기였다.

물론 캄비라 바투와 시에나는 여전히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쿠리오는 다른 일행들과 많이 친해진 듯 보였다.

“여기서 얻은 보석들로 더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

룸바르트도 기분이 좋은 듯 했다.

“고레인씨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시리엘 아즈는 보석들을 색별로 분리해 각각 다른 주머니에 담았다.

헤이치 페드론은 주머니를 허리춤에 달았다.

“왜 용병들이 늘어나는지 알 것 같군.”

“오늘은 술 한잔 걸치죠?”

파그노의 제안에 모두들 기뻐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술을 팔까?”

“에이, 술마저 없으면 여기 사람들은 생지옥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나.”

“아. 그런가요?”

“이야. 헬리시타를 떠난 후에 이런 날은 또 처음이네.”

모두가 한 마디씩 즐겁게 나누었다.

잔바크 그레이는 가리온 곁에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다.

“별일 없으셨죠?”

가리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사람들에게 들으니까, 바루나라는 여자가 여기서 꽤 유명한 점쟁이랍니다. 그래서 그 눈썰미로 청기사단장님을 한 눈에 알아본 겁니다. 하하”

“아니, 자네. 지금 아첨하는 거야?”

파그노가 잔바크 그레이 옆에 섰다.

“아첨은.”

잔바크 그레이와 파그노는 지난 앙금을 털어낸 듯 함께 웃었다.

두 사람은 원래 이렇게 한 번 웃어버리면 그만인 친구였다.

파그노는 거기에 룸바르트까지 끼웠다.

“어이! 룸바르트! 우리 같이 가지!”

룸바르트는 웃으면서 파그노 옆에 섰다.

“촌스럽게. 몰려 다니기는.”

그 사이 가리온은 옆으로 빠졌다.

에바는 가리온을 따라 빠졌다.

타마라는 모르는 척 눈을 흘기며 캄비라 바투의 옆으로 갔다.

누군가 눈치를 채고 쫓아올까 두려웠지만, 시에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급해도 자연스레 걸으려 노력했다.

그곳에 가야만 한다는 의식이 더 컸다.

‘분명히, 나도 불렀어.’

확실히 소리로 전달되지는 않았다. 귀로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시에나도 불렀다.

처음에 시에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환청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여자가 가리온을 한 번 부르는 동안 수십 번 시에나를 불렀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를 불렀다.

“아이야.”

무겁지만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

시에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이는 없었다.

일행들이 모두 가리온을 끌고 가는 여자를 시끄럽게 따라가는 것을 보고서, 시에나는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린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부른 거야.’

시에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레인의 제안으로 이계의 생명체들과 싸울 때도 계속 생각했다.

점쟁이 바루나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가야만 하는 것인지,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 직접 물어보자.”

시에나는 낮의 그 집 앞에 섰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땀이 배인 손을 들어 가볍게 쥐었다. 문을 두드릴 셈이었다.

그러나 곧 마음이 바뀌었다.

시에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손잡이를 잡았다.

조금씩 힘을 주어 밀자, 문은 가볍게 열렸다.

“하아.”

시에나는 다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난 당신 같은 방문객이 좋아.”

시에나는 촛불이 붉게 일렁이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귀찮게 일일이 찾아 다니지 않아도 되고, 데려오려고 힘을 쓰지 않아도 되고.”

시에나는 사방을 붉은 천으로 가린 방을 좌우로 살폈다.

“게다가 당신을 찾은 사람은 매우 상냥하거든.”

“날…. 찾아요?”

시에나는 조심스럽게 물으며 멈췄다.

구슬 가까이로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점괘 같은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구슬은 위험해 보였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어…. 신중한 사람이라서 그렇지.”

바루나의 표정은 매우 부드러웠다.

시에나는 듀스 마블을 떠올려봤지만, 듀스 마블이 그렇게 오랫동안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난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그는 당신을 잘 알아.”

바루나가 천천히 구슬을 어루만졌다.

손에서 팔이, 어깨에서 목, 그리고 입술에서 얼굴전체가 돌이 되기 시작했다.

시에나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바루나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목소리였다.

“아이야.”

시에나는 어쩐지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에바는 가리온의 팔목을 붙잡았다.

“멈춰요!”

시에나에게 가려는 가리온을 막아야 했다.

시에나가 어째서 점 치는 여자의 집에 들어갔는지는 에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홀린 것 마냥 따라가는 가리온을 멈추게 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지금 막지 못하면, 이대로 시에나를 따라가게 두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리온!”

가리온은 에바의 얼굴을 보았다.

“….”

“가리온….”

가리온의 눈은 헬리시타를 떠났을 때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그 눈이 에바가 모르는 가리온 같아서 가슴이 저미었다.

“….”

가리온은 에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돌아서려 했다.

“…. 가리온!”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좋아해!”

가리온이 우뚝 멈췄다.

에바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준비한 말은 이것이 아니었다.

고백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뒤에서만, 가리온의 뒤에서 있으면서 감추려고만 했던 마음이었다.

“좋아해…. 왔어….”

에바는 가리온의 팔목을 더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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