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Yesterday - 역사의 시간 - 4장. Turn. 대륙의 변화
| 21.01.06 12:00 | 조회수: 1,043


돌무더기는 점점 더 많아졌고 동굴의 굴곡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도 처음 들어왔던 서늘한 동굴 안은 계속 걸어 땀이 찬 자덴성의 사람들에게 더 이상 추운 곳이 아니었다.

“조금만 쉬어 갈까요?”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들 넓은 공터에 주저앉아 버렸다. 도대체 헬리시타는 얼마나 더 가야 나오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모두의 가슴에 울렸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점점 더 작고 복잡해졌다.

“헬리시타에는 언제쯤이나 도착하게 될는지….”

한 사람의 말문이 열리자 다른 사람들의 궁금증도 홍수처럼 쏟아졌다.

“이리로 가는 게 맞아요?”

“우리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초장이도 이제는 지쳤는지 일일이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할말도 변명조의 말들밖에 없었다. 자신도 감으로 가는 길이라 세세히 확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언제 피곤했냐는 듯이 자기들끼리 묻고, 자기들끼리 대답하며 왁자지껄했다.

“금방 도착할 길도 아니잖아요. 원래도 큰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러다 길이 그냥 끝나버리면 어쩌죠?”

“엄마.”

한 아이가 누워있는 엄마의 몸을 흔들었다.

“엄마아.”

“왜 그러니?”

“배고픈데. 엄마가 안 일어나요.”

“그래? 그럼 아줌마가 먹을 만한 걸 좀 줄까?”

아이는 여인을 여기 저기 훑어보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빵을 받아 든 아이는 한 입 베어 물더니, 자기 엄마를 또 흔들었다.

“엄마도 이거 먹어.”

“이봐요. 좀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봐요.”

친절을 베풀은 여인은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람을 흔들었다.

“핫!”

“뭔데 그래요?”

“차가워요. 몸이. 식은 게. 꼭.”

“에그머니! 죽었나?”

여인은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는 듯이 털썩 주저 앉았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사람들을 살피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어른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아이도 눈치 챈 것이었다.

“뭐?”

“세상에!”

“어디 한 번 봅시다.”

시신을 자세히 살피자 종아리 부위에 여섯 개의 뻘건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주위로 피부가 하얗게 문드러져 있었고 다리 한쪽의 나머지 부분들은 세게 부딪힌 것처럼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샤락. 샤락. 찌르륵.

어둠 사이에서 소름 돋는 소리가 문득 들려왔다. 자덴 성의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에 뒷걸음쳤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찌르륵. 샤락.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초장이가 얼른 남은 불씨로 어둠을 밝히자 종아리만한 것이 빨간 눈알을 굴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자덴 성의 사람들은 여섯 개의 발이 양 옆에 달려 있어 벌레라 생각했다. 동굴의 검고 질퍽한 바닥에 어울리는 색깔을 가지고 있는 징그러운 모습을 가진 그것은 찌르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것에게 당한 것인가?”

유난히 큰 벌레의 주둥이 주위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이 아이의 엄마가 그것에 당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게 했다.

벌레는 점점 더 자덴의 주민들을 향해 다가왔다.

“저런 거 싫어!”

자덴 성의 청년들에게 인기 꽤나 있었을 법한 외모의 아가씨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그 움직임이 감지 되었는지 벌레는 갑자기 다리를 빠르게 놀려 다가갔다. 눈알이 사방으로 돌아가는 게 보는 사람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꺄아아!”

눈 깜짝할 사이에 벌레의 주둥이가 아가씨의 얇은 다리를 꿰었다. 하지만 다리를 타고 피가 흐르지 않았다.

“피…. 피를 빨아 먹나 봐!”

“싫어!”

다른 아가씨도 도망쳤다.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쌓인 돌무더기에 넘어지고 말았다.

“아…! 아! 싫어!”

넘어진 아가씨의 가냘픈 몸 위로 벌레가 두 세 마리 모여 들었다. 아가씨의 비명소리는 차차 잦아 들었고 벌레의 찌륵거리는 소리는 좀 더 거세졌다.

“뭐… 뭐야….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거지?”

초장이는 불길한 마음으로 불을 휘휘 저어 보았다.

“으윽!”

불빛이 번져 가는 곳마다 같은 모습의 벌레들이 끝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초장이가 불빛을 휘휘 저어보았지만, 조금 움찔하더니 다시 기어오기 시작했다.

“살려줘!”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

“제발 누가 우릴 살려줘요!”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악을 썼지만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크루드 나이트 메어에게 포위당한 자덴 성 사람들의 마지막 비명이 흙을 타고 올라 땅 위까지 도달할 무렵, 이계의 생명체들은 헬리시타를 포위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캄비라 바투는 물을 꿀꺽 꿀꺽 마시고서 돌덩이들만 무성한 산비탈을 척척 걸어갔다. 캄비라 바투의 우람한 몸이 흔들릴 때마다 흙 모래가 스르르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저 아래에서는 또 한 무더기의 리자드맨 나이트가 올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많아지고 있어.”

“족장님! 하아. 하아. 잠시 쉬어야겠습니다.”

바기족 전사들은 모두들 심호흡을 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컥 숨이 막혀 얼굴이 파래지는 전사도 있었다.

“이리 가는 게 확실한 건가?”

쿠리오는 마시고 있던 물병 뚜껑을 닫고 입을 훔쳤다.

“아니면 어디겠습니까?”

“건방진 놈.”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를 노려보며 도끼를 허리 춤에 도로 넣었다.

방금 전까지 캄비라 바투와 바기족 전사들은 리자드맨 나이트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덩치로만 보면 바기족 전사들이 월등했지만, 리자드맨 특유의 탄력과 검술은 혀를 내지르게 만들었다. 리자드맨 나이트를 힘겹게 해치운 전사들은 잠시 짬을 내 제각기 평평한 돌을 찾아 앉아 쉬고 있던 참이었다.

“거 참, 우리도 놈들처럼 녹색 피부인데 왜 그렇게 빠른 걸까요?”

“크크. 난 그 이유를 알지. 걔들은 광이 나거든. 맨질 맨질.”

“크으. 그런가? 허기는 꼭 우리 집사람 피부 같더라니.”

“이 사람. 크크크.”

자덴 성이 주인이 없는 채로 버려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캄비라 바투는 참모들을 반으로 갈라 한 편은 바기족 촌락으로 돌아가 남은 가족들을 데려오게 하고 또 한 편은 자덴 성에 남아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소수의 전사들을 이끌고 헬리시타를 향했다.

지금껏 누트 샤인을 제외하고 바기족 그 누구도 바깥 세상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캄비라 바투는 오늘의 승리를 발판 삼아 진출하게 될 헬리시타를 두 눈으로 꼭 봐야 했다.

“너를 믿겠다.”

쿠리오는 캄비라 바투의 시선을 피해 땅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길잡이가 죽도록 그냥 둘 수야 있나? 안 그래?”

“그러엄. 이봐. 우리 족장님 아니었으면 자넨 벌써 죽었어. 당연히 감사해야지.”

바기족 전사들은 리자드맨이 쿠리오를 덮치려던 순간 도끼를 찍어 내리던 캄비라 바투의 모습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부풀렸다.

쿠리오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러려고 따라 나섰던 것이 아니었다.

자덴 성에 들어 온 캄비라 바투와 바기족 전사들은 포로들의 안내로 회의가 열린다는 방으로 향했다. 회의장은 꽤 큰 편이었지만 원래는 중역들만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장소였던 터라 바기족 전사들이 모두 들어오려 하니, 바기족들의 냄새와 무게와 머릿수를 감당하느라 무너지려 했다.

쿠리오 일당들은 구석 한편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쩌렁 쩌렁 울리는 바기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척 했다.

“어떻게 도망갈 방법이 없을까?”

“이렇게 빼곡히 들어차 있는 상황에서는 무리지.”

“도망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가, 제가 헬리시타까지 가는 길을 압니다!”

어느 새 쿠리오는 벌떡 일어서 있었다. 깜짝 놀란 일당들은 쿠리오를 말리려 했다.

“쿠리오?”

“조용히 하고 얼른 앉게!”

“자네, 헬리시타에 가본 적도 없잖은가!”

쿠리오는 친구들을 돌아보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가봤습니다.”

쿠리오는 눈을 똑바로 뜨고 캄비라 바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외쳤다.

“어쩌자고 저러는 거지?”

“이봐! 도대체 왜 그래?”

쿠리오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길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앞쪽에 잔뜩 서있는 참모들과 바기족 전사들에게도 잘 들리도록 또박또박 말했다.

“길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기분 나쁜 표정이었지만,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에게 관심을 가졌다.

“포로 주제에 건방지구나.”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캄비라 바투는 웃음을 걷고 정색했다.

“앞으로 오라.”

친구들은 쿠리오의 옷가지를 잡고 매달렸다.

“가지 말게!”

“분명히 자네를 죽일 거야!”

쿠리오는 바기족 전사들의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를 가까이 오게 하더니 손을 들어 쿠리오의 어깨에 얹었다. 몸을 휙 돌려 쿠리오를 참모들에게 보였다. 쿠리오는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과 고약한 냄새에 코가 질끈 했지만 꾹 참고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재채기를 하거나 표정을 찡그리면 기분이 상한 바기족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캄비라 바투의 말에 참모들은 더욱 얼굴을 찡그리며 쿠리오를 응시했다. “저 자는 인간 아니오?”

“인간을 믿을 수 있겠소?”

“자덴 성으로도 우리는 만족할 수 있소.”

캄비라 바투는 참모들의 말을 듣고는 다시 쿠리오에게 물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쿠리오는 무엇인가 결정적이고 확신을 줄 만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바기족의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소수만 이끌고 헬리시타에 간다기에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벌떡 일어선 것이었다.

쿠리오는 별 수 없이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듯 했다.

“헬리시타까지 가겠습니다.”

“뭐? 하하하.”

캄비라 바투가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기족 전사들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쿠리오가 왜 저러지?”

“헬리시타가 그렇게 가고 싶었나?”

“혹시, 중간에 도망치려고?”

친구들의 속삭임은 캄비라 바투의 말 소리에 금새 수그러들었다.

“이 친구가 저를 도우려나 봅니다.”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의 어깨에 얹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쿠리오는 그 힘을 버티느라 땀을 뻘뻘 흘릴 정도였다.

“우리는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참모들의 얼굴은 뚱해 있었지만 바기족 전사들은 캄비라 바투에게 집중했다. 자덴 성까지 오게 한 그를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인간입니다.”

캄비라 바투의 목소리가 격양되어 떨렸다. 진심 어린 말이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자덴 다음은 헬리시타입니다.”

몇몇 전사들이 캄비라 바투에게 환호했지만 쿠리오는 침이 목에 걸리는 듯 했다.

‘바기족이 헬리시타까지 노리고 있었다니!’

“그래, 헬리시타는 어떻게 가지?”

캄비라 바투의 갑작스런 질문에 쿠리오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크로오 산맥을 넘으면 됩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자덴이나 헬리시타나 카시미르 산맥 아래 있었기 때문에 크로오 산맥만 넘으면 되었다.

“그래?”

쿠리오는 자신이 추궁 당하는 느낌이 들어 자덴 성의 누군가에게 들었던 대로 말을 이어 붙였다.

“크로오 산맥 꼭대기에서면 헬리시타가 보입니다!”

“오. 그래? 그럼 자덴 성도 보이겠군?”

“네! 그렇습니다!”

쿠리오는 얼른 대답하고 나서, 자신이 너무 과장되게 대답한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그렇군. 멋진 경치가 되겠어. 지금 당장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캄비라 바투는 호쾌하게 웃고서는 예리한 눈으로 쿠리오를 뜯어 보았다. “거짓은 아니겠지?”

쿠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출발하자.”

쿠리오는 더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오면!’

“자. 자. 일어나라!”

캄비라 바투의 외침에 곳곳에서 한숨이 메아리 쳤다. 하지만 더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리자드 맨 나이트가 산맥을 타고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그냥 헬리시타로 가면 안 되요?”

“저것들도 같이 가면 딱 좋겠군.”

“안됐지만.”

캄비라 바투는 전사들의 말을 딱 잘랐다.

“저 놈들의 목적지도 우리와 같은 곳인 듯 하다.”

“뭐? 헬리시타요?”

캄비라 바투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산맥 꼭대기 쪽으로 가리켰다. 점점이 보이는 것들이 한 방향으로 산맥을 넘고 있었다.

“허억!”

“나는 망가진 헬리시타를 손에 넣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요?”

캄비라 바투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죽이면서 간다!”

“역시.”

“어휴.”

바기족 전사들은 캄비라 바투의 말에 넌더리를 내는 듯 했지만 엉덩이를 그냥 무겁게 두지는 않았다. 저 전사들이 캄비라 바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쿠리오는 두려워졌다.

“자. 가야지! 어서!”

슬슬 한 두 명씩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쿠리오도 따라 일어섰다. 쿠리오는 물병을 챙기고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이미 여기까지 왔어. 기회가 오면!’

바지 단을 조인 손목 굵기의 끈을 탄탄하게 마저 매만진 후 쿠리오는 다시 앞장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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