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 - 새로운 약속 - 15장. Face to Face. 조우
| 21.01.13 12:00 | 조회수: 952


델카도르는 다음 말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발론 섬은 죽음의 섬으로 유명했다. 애초에 델카도르가 그런 곳에 보낸 것은 타마라와 가리온. 세그날레와 헬리시타와 연결되지 않고 싶어서였다. 그것은 델카도르 식의 경고였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왔다.

“아발론 섬은… 어떤가?”

가리온이 대답했다.

“아발론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발론 섬에는 갈 수 없었습니다.”

“뭐?”

델카도르는 눈을 움찔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들 멀쩡했다. 다만 처음 가리온의 일행을 봤을 때와는 무언가 틀린 것 같았다.

“아발론 섬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은….”

타마라도 덧붙였다.

“정찰의 효과는 충분히 있었지요.”

“….”

“아발론 섬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레퀴에스 해변이 위험했다,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타마라의 눈빛이 매서웠다. 델카도르는 타마라가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가리온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 레퀴에스 해변까지만 갔지, 아발론 섬에는 들어가지 못한 것 아닌가.”

델카도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과 더 깊게 관여하는 것은 델카도르가 지금껏 지켜온 평화에 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 말씀은?”

가리온이 물었다.

“자네에게 정보를 주지 않겠네!”

“그래요?”

델카도르는 타마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절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고마워요. 델카도르. 당신의 호의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어요. 이 보답은 나중에 반드시, 하겠습니다.”

타마라가 정중히 인사하자, 가리온은 돌아섰다.

“어딜… 어딜 가는 거지?”

“크레스포로 가겠습니다.”

가리온은 문을 열었다.

가리온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힘을 다 발휘하려면, 차라리 혼자 싸우는 게 좋았다. 정신 없이 싸우는 틈에서 같은 편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가리온은 에바를 잡지 않았다. 룸바르트의 손을 잡고 뛰어가는 에바의 뒷모습이 서글프기는 했지만, 가리온이 잡을 것은 검뿐이었다.

"으아아앗!"

가리온은 숨겨두었던 힘을 유감없이 방출시켰다.

특별히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알로켄의 힘이 가리온의 손을 따라 흘러 나왔다. 억눌러왔던 본성을 해방시키는 시원한 마음뿐이었다. 가리온의 검은 날듯이 가벼웠다.

투둑 투둑.

숲에 우거졌던 붉은 채찍들은 가리온의 검에 먼지처럼 잘려나갔다. 온통 초록이던 해변가의 숲은 가을 단풍 숲처럼 붉게 물들었다.

홀로 남은 가리온에게 스산한 바람이 스쳐갔다.

"돌아가요."

낮고, 음산한 목소리.

가리온의 옆이었다.

가리온은 검을 옆으로 겨눴다.

“검을 거둬요.”

날카로운 눈매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을 때, 가리온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마라?"

“혼자 싸우게 두다니. 너무들 하는군요.”

타마라는 놀리듯 웃었다.

“당신이야말로 너무하군.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킥. 가리온. 언제나 내가 말했죠. 방심하지 말라고. 내가 노리고 있다고. 제 말을 귀담지 않으셨군요.”

가리온은 마치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던 타마라를 떠올렸다. 타마라는 늘 일행에 협조적이지 않았고, 로아에서는 가리온에 앞서 델카도르를 만나기도 했었다.

“그래…. 내 실수로군. 진작에 눈치채야 했었는데 말이야.”

“가리온. 아. 가리온. 당신은 너무 진지해요.”

가리온은 검끝을 제대로 겨누었다. 여차하는 순간 검은 그대로 진격할 것이다.

“가리온. 난, 우선 감사 인사를 듣고 싶어요. 당신들 때문에 일부러 여기를 청소했으니까.”

“청소?”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나요? 암살자들의 섬, 세그날레 근처에 이계의 생명체가 없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타마라가 검끝을 피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리온, 당신의 진짜 실력이라면 모르겠지만.”

가리온은 움찔하며 손을 내려다 보았다. 알로켄의 힘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곳에 그냥 왔다가는 죽어버렸을 테니까.”

가리온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정체를…!’

타마라는 웃으며 가리온을 더욱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숨길 것 없어요. 알고 있었으니까."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그리고 검은 거두는 게 좋을 거예요. 제 아무리 알로켄족의 피를 가진 자라 하더라도 암살자들 수십 명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혼자가 아닌가?”

“킥. 혼자일 리가 없죠. 세그날레들은 생각보다 허약하답니다. 우리들은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때 더 치명적이죠."

"누가 있는 거지?"

가리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만 무성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에요.”

타마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가리온. 당신이 설사 아발론 섬을 정찰하고 간다하더라도 델카도르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거예요"

"...?"

"그는 헬리시타나 세그날레와 관련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러나 그는 인카르의 집정관이오!”

“순진한 사람. 킥킥.”

타마라는 마구 웃어대다가 돌연 차갑게 말했다.

“돌아가요. 당신의 일행들을 데리고. 그들은 가까이에 왔어요. 그래도 당신을 기사단장으로서 인정하긴 하나보군요. 그들을 만나면 로아성으로 돌아가요. 가서 델카도르를 만나요.”

“그렇지만 임무는….”

“델카도르는 처음부터 당신을 죽일 생각이었어요.”

“…. 나도 알고 있소. 아발론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부터! 그러나 나는 거절할 수 없소. 임무를 완수해야 하오. 나에게는…. 나에게는…. 나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소! 나는 서둘러야 하오. 시간이 없어!”

가리온은 고함쳤지만 타마라는 바짝 다가섰다. 차가운 투구 속에 숨은 가리온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타마라의 황금색 눈은 가까이에서 보자 아무것도 없는 듯 뿌옇게만 느껴졌다. 정신이 몽롱했다.

“가리온. 당신은 아발론 섬까지 들어가려 했어요. 정말로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세그날레들의 섬으로 말이죠.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요?”

가리온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건 말이죠. 당신이 크레스포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에요. 세그날레들의 섬, 지옥 문이 아니라. 진짜 지옥에. 카론과 더 가까운 곳에.”

가리온의 입이 벌어졌다.

“게다가 그것은 델카도르의 허락을 맡을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크레스포로 가는 길에는 복수의 빙곡도 있죠.”

타마라는 가리온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대었다. 가리온의 눈에는 타마라가, 타마라의 눈에는 가리온이 있었다.

“이제야말로 당신의 시간이 시작되었어요.”

가리온은 눈발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파르카 신전을 보고 있었다.

‘에바도 보고 있을까….’

에바는 룸바르트와 함께 있었다.

레퀴에스 해변에서 돌아 온 후부터, 가리온의 일행에게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그렇게나 룸바르트를 면박하던 에바는 늘 룸바르트와 함께였고, 남매인 칸과 파그노는 더 이상 수다스럽지 않았다. 특히 칸은 거의 말하지 않았고 파그노는 룸바르트하고만 가끔 대화를 했다. 잔바크 그레이는 헤이치 페드론, 시리엘 아즈와 어울렸다.

“가까이 있군요.”

타마라가 말했다.

가리온 곁에는 이제 에바 대신, 타마라가 있었다.

타마라는 이계의 생명체가 가까워짐을 알렸고 정말로 카타스트로프가 포효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드디어 복수의 빙곡인가?”

가리온은 흐트러져 있던 일행들을 손짓으로 모았다.

“이거 원, 또 시작이군.”

어색해진 일행들 속에서 여전히 활기찬 것은 룸바르트 뿐이었다. 룸바르트는 얼른 그류페인을 소환했다.

“나한테 좀 고마워해도 좋지 않아?”

“천만에.”

“나는 죽어날 지경인데?”

“흑마법 따위는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못말리겠군.”

“뭐가? 난 충분히 강해.”

“알지. 알아. 하지만 활만 잘 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 다른 사람에게도 좀 기대도 되잖아? 나는 언제든 준비되어있어.”

“필요 없어.”

“에바는 정말로 자신만만하군.”

헤이치 페드론은 웃으며 룸바르트와 에바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에바는 전혀 이런 대화가 즐겁지 않았다.

"간단해요. 난 화살을 겨눌 때 한 곳만 보죠. 다른 건 전혀 보지 않아요. 아니, 보이지 않아요. 내가 그를 바라볼 때처럼."

“또 저 녀석 이야기군.”

“조용히 해. 곧 나타날 거야.”

가리온은 룸바르트와 에바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타마라에게 한 번 머무른 다음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파르카 신전에서 에바를 처음 만났던가….’

가리온은 항상 자신에게 친절했던 에바를 생각했다.

“뭐해? 나타났잖아! 가자구!’

룸바르트의 외침에 가리온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카타스트로프 열 댓 마리가 일행의 앞에 나타났다. 이계의 생명체들에게서 흔히 나는 역겨운 냄새가 순백의 눈을 뚫고 올라왔다. 큰 덩치로 몰아 쉬는 숨은 그들이 몹시 흥분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카타스트로프 앞에는 아이슈마들이 줄지어 있었다.

“쉽지 않겠는걸. 꼭 같이 나타난단 말이야.”

“이 정도는 금방 끝내야 기사 아닌가?”

잔바크 그레이의 말에 룸바르트가 토를 달았다.

잔바크 그레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하여간 성질하고는.”

룸바르트는 잔바크 그레이가 사라지자 가리온에게 괜히 시비를 걸려 했다. 그러나 가리온은 이미 제일 앞에서 이계의 생명체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리온의 일행은 하얗게 구불진 언덕을, 아이슈마와 카타스트로프들을 헤치고 넘어갔다.

싸움이 한창 일 때 타마라는 손가락을 멀리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요.”

그러나 타마라를 제외하고 누구도 웃지 않았다. 특히 헤이치 페드론의 표정이 제일 굳어졌다.

캄비라 바투 옆에서, 시에나가 가리온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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